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다.
예컨대 사업상의 식사가 그렇다.
- 헤르만 시몬 -
ㅁ 함께 먹으면 친해진다
여러 종류의 수컷 새들은 짝짓기를 할 때 암컷에게 먹이를 제공한다. 제비갈매기 수컷은 암컷에게 물고기를 주면서 구애를 한다. 박새나 까마귀는 자신의 짝이 되어주길 바라는 상대에게 먹이를 먹여준다.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새들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오늘 저녁 어때요?' '언제 식사나 같이 하시죠'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을 때, 우리가 흔히 하는 일은 식사를 제안하는 것이다. 이성에게 호감을 사고 싶을 때, 서먹서먹한 관계를 진전시키고 싶을 때, 거래처를 설득하고 싶을 때 우리는 식사 대접을 제안한다.
낮선 사람과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 식사에 초대하는 일은 지구상 어디서나 가장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다. 우리 선조들 역시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부족들과 화해할 때나,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시키는 제사나 축제행사에 반드시 음식을 나눠먹는 행사가 포함된다. 친밀감을 높이는 데 먹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음식을 대접받거나 함께 먹게 되면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 늘어나는데, 이를 '오찬 효과(Luncheon Effect)'라고 한다.
먹거나 마시면서 이야기 하면 대화가 더 쉽게 풀리고 음식을 접대한 사람에게 더 쉽게 설득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사람들은 뭔가를 받으면 그만큼 베풀어야 한다는 '상호성의 원리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리건은 상호성의 원리를 간단한 실험으로 확인했다. 실험에 참여한 대학생들 중 한 명에게 실험실 앞에 놓인 콜라를 들고 가 '꽁짜 콜라'라고 하면서 다른 참여자에게 주도록 했다. 실험이 끝난 후 콜라를 나눠준 학생에게 자선모금을 위한 행운권을 다른 학생들에게 팔아달라고 부탁하게 했다. 콜라를 얻어 마신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행운권 구입 비율을 비교한 결과 콜라를 얻어 마신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무려 두 배 이상이나 많이 구입했다. 공짜 콜라를 그냥 가져다준 것에 불과한 작은 호의에 대해 학생들은 그보다 훨씬 더 큰 호의로 되갚은 것이다.
ㅁ 기분이 좋아지면 태도가 달라진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거액의 접대비, 정치자금 기부행사의 만찬 제공, 제약회사 직원들이 의사들을 향한 접대, 판매 사원들의 고객 접대 등 다양한 방식의 접대를 하는 사람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신조 중의 하나는 '푸짐한 힉사를 대접받은 고객은 물건을 산다'
식사를 대접 받은면 왜 상대의 요구를 쉽게 거절하기 어려울까? 그 이유는 맛있는 음식으로 인한 유쾌한 감정이 함께 먹은 사람의 제안에까지 파급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래즈란은 실제로 그런지 실험으로 확인했다. 실험에 참가한 대학생들에게 몇 가지 정치적 주장을 들려주었다. 한 조건에는 음식을 제공하고, 다른 조건에는 먹을 것을 제공하지 않았다. 대학생들은 어떤 조건에서 들려준 정치적 주장을 더 호의적으로 평가했을까? 예상했던 대로 음식을 먹으면서 들었던 조건의 학생들이 더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또 음식을 제공받게 되면 사람들이 정말 자기주장을 굽히고 태도를 바꾸게 되는지를 실험해 봤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미국 군대의 규모' 등에 대한 몇 가지 의견을 조사했다. 그런 다음 한 조건에서는 콜라와 땅콩 등 간식을 제공하고, 다른 조건에서는 간식을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들의 의견과 상반되는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그 결과 간식을 먹으면서 들었던 학생들이 자신의 태도를 더 많이 바꾸었다.
맛있는 음식뿐 아니라 우리를 유쾌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건 그것과 연결된 것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심리 현상을 '연상의 원리(Principle of Asssociation)'라고 하며, 이 원리는 마케팅 전략의 기본이 된다. 광고에서 우리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어떤 자극과 제품을 연결시키면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어느 회사가 마을에 와서 행사를 한다고 가셨다가 효과도 없는 건강식품을 고가에 구입하고 그 돈을 내지 못해 자식들에게 말도 못 하고 끙끙 앓던 생각이 난다.
오찬 효과는 연상 원리를 따른다
1.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긍정적인 감정이 유발된다.
2. 함께 식사한 사람과 긍정적인 감정인 연합된다.
3. 그 사람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ㅁ 함께 먹는다고 항상 관계가 좋아질까?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일단 그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야 한다. 그중 가장 쉬운 방법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힘든 일을 끝내고 함께하는 회식자리만큼 팀워크를 돈독하게 하는 것은 없다. 온 가족이 모여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그런데 자기 돈으로 회식을 시켜주고도 부하직원에게 미움을 받는 상사도 많다. 그들의 특징은 내가 한턱냈으니 할 얘기를 좀 하겠다는 심정으로 식사자리에 잔소리를 늘어놓는 경우다. 하지만 먹을 것 앞에서 잔소리를 하거나 말을 많이 하는 것만큼 짜증 나는 일은 없다. 아무리 맛있는 것을 사줘도 분위기를 망치면 역효과가 난다. 회식자리에서 스트레스를 주는 주제를 입에 올리는 것은 금물이다.
그러고 보니 내 일 상에서도 언제부턴가 회식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다. MZ세대들이 자기주장이 강하고 혼밥을 좋아한다 어쩐다 말이 많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또는 우리의 상사들의 즐거운 회식 자리를 불편하게 했던 모양이다.
가정에서도 진수성찬을 차려놓은 식사자리에서 아내 또는 부모가 '이번달 대출금을 갚아야 되는데' ' 옆집 아저씨는 이번달에 보너스를 받았다고 하는데' '당신은 승진 언제 해?' '학원은 열심히 다니고 있어?' '방 청소 좀 해라' '옆짐 애는 안 그런데 너는 그게 뭐니?'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 놓고 그 식탁을 괴로운 고문의 자리로 만든 것이다.
즐거워야 할 식탁에서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그 시간이야 말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식자리나 식사 시간에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게 좋다. 아무리 진수성찬이라도 그런 말을 들으면 밥맛이 떨어진다. 그래서 기분 나쁜 사람을 보면 '밥맛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속담이 생겼다.
미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족들과 저녁을 먹지 않는 10대들의 혼전성교 비율이 함께 저녁을 먹는 10대 보다 무려 4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정에서의 식사 분위기가 청소년의 탈선행동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단 몇십 분의 식사시간이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 수도 있고 등을 돌리게 만들 수도 있다. 좋은 관계를 원한다면 함께 식사를 하라, 되도록이면 즐거운 자리가 되게 하가. 최소한 그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지 마라.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유쾌한 경험과 연결시키는 것이 사소하지만 중요한 삶의 지혜다.
나도 언제부턴가 아이랑 같이 식사를 한 기억이 별로 없다. 우리 아이는 식사시간에 유튜브를 모면서 식사를 하길래 나도 모르게 잔소리를 하고 공부 얘기를 했더니 언제부턴가 혼자 먹는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가정에서의 식사자리를 절호의 찬스로 알았나 보다. 갑자기 한 때 유행 했던 개그콘서트의 '밥 묵자'가 생각났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점심이나 가족과 나누는 저녁은 그냥 밥만 먹는 자리가 아니다.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에게 즐거운 시간이 되도록 배려하자. 누군가와 식사를 약속하면 그 자리를 최고의 자리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래서 함께 밥 먹고 싶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거래처와의 점심, 직장에서의 회식, 가족들과의 식사시간을 이제부터라도 바꿔보도록 노력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