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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너무 많은 화폐들(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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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 국가의 화폐를 발행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만 준다면
누가 그 국가를 지배하든지 아무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 마이어 암셀 로스실트. 로스트차일드 가문의 시조 -

 

▣ 살바도르 달리의 화폐

모든 국가에는 국기, 국가 원수, 그리고 화폐가 있다. 그렇지만 2030년이 되면 화폐 중 일부를 정부 당국이 아닌 기업이나 심지어 개인용 컴퓨터가 발행할지도 모른다. 현재는 많은 사람이 그러한 가능성 자체를 대단히 위험한 사상으로 여긴다.

 

     13세기말 중국에서 지폐가 사용되는 모습을 처음 본 마르코 폴로는 경탄을 금치 못하며 이렇게 기록했다. "이 종잇조각들은 순금이나 순은처럼 확실한 가치를 갖고 발행된다." 1260년 이 기묘하고 특별한 종이를 처음 유통시킨 인물은 <쿠빌라이 칸>이다. 그는 몽골의 정복자 칭기즈칸의 손자이자 원 제국의 시조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적 개념의 지폐는 그보다 몇백 년 뒤 영국과 프랑스가 경쟁하던 와중에 탄생했다. 1694년 영국 국왕 윌리엄 3세는 적국과 끝없이 전쟁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새롭게 설립된 민자 영국은행에 금과 은을 담보로 잡고 사람들에게 빌려줄 수 있는 지폐를 발행할 권리를 준 것이다.

 

     19세기 후반에는 은행이나 회사가 발행산 상업 어음이 신용 연장이나 지급을 위한 일종의 화폐로 통용되었다. 로트실트 가문은 1815년 전서구로 누구보다도 빠르게 나폴레옹의 워털루 패전 소식을 전해 듣고, 이 정보를 이용해 런던 채권 시장에서 막대한 이득을 올렸다고 한다.

 

     각 국 정부는 화폐에 대한 통제력이 떨어지고 금융 위기가 반복되자 150년 전에 화폐 발행과 유통에 대해 국가가 독단적인 권리를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2030년이 되면 국가가 독점했던 국가가 독점 발행하는 화폐들은 여전히 남아 있겠지만 국가의 영향력이 떨어지면서 디지털 대안 화폐들이 새롭게 등장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 화폐와 가상 화폐, 그리고 또 다른 유형의 화폐들이 모두 사용되는 미래를 그려보려면 화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20세기 들어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사람이며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인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은 현재 수천만 달러를 호가하고 있다. 당시에 달리는 유명하기도 했지만 사업가 기질의 유별난 구석도 있었다. 그는 친구들과 뉴욕의 어느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수평적 사고를 바탕으로 작은 실험을 했다. 계산할 때가 되자 그는 수표 뒷장에 자신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을 그려 종업원에게 주었고, 종업원은 그 수표를 주인에게 가져갔다. 달리가 서명하고 건네준 수표는 은행으로 가져가면 달리의 은행 계좌에서 그만큼 현금으로 바꿔주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본 주인은 수표를 작은 액자에 넣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식당 벽에 걸어두었다.(그림 9 참조)

     결국 공짜로 식사한 달리는 매우 흡족해하며 같은 수법을 여러 번 써먹었다고 한다. 여기서 달리가 건네준 수표는 예술 작품으로 바뀌며 별개의 존재가 되었고, 식사는 했지만 그 비용은 실제로 통용되는 화폐로 해결되지 않았다. 달리는 천재적인 수법으로 자신만이 쓸 수 있는 화폐를 찍어낸 것이다. 사람들이 기꺼이 달리의 그림을 화폐의 형태로 받아준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진짜 화폐를 둘러싸고도 일어날 수 있다. 이윽고 달리는 자신만의 화폐를 무수히 찍어냈고 그 화폐의 가치는 실제 음식값 보다도 낮아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식당 주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수표를 벽에 걸어두는 대신 은행으로 가서 진짜 화폐와 바꾸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누구든 화폐를 찍어내거나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진짜 화폐처럼 유통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대안 화폐는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오를 것이라고 생각할 경우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화폐가 그렇듯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오르내린다. 과도한 공급은 가치를 떨어뜨리며 사람들이 사용할 의 자체를 줄어들게 만든다. 

 

▣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20세기 유명한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인 <밀턴 프리드먼>이 강조했듯 모든 일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화폐는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특별하고도 독창적인 도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전 세계 금융 제도 안정을 위해 금본위제도(금 가치에 연계되어 있는 화폐)를 채택했다. 1971년이 되자 연방정부의 적자가 늘어났고 덩달아 달러를 계속 찍어내자 당시 닉슨 대통력은 금본위제를 끝내기로 결정했다. 결국 1971년 이후 화폐의 변동성, 투기성, 위험성이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저자는 학생들에게 한 국가가 초인플레이션에 빠지는 현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돈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곤 한다. 예를 들면, 전체 물가가 세 자릿수 비율로 뛰어오르는 초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버스와 택시 둘 중 어느 쪽을 이용하겠는가? 정답은 돈을 먼저 내고 타는 버스 대신 내릴 때 돈을 내는 택시를 타는 쪽이 낫다. 왜냐하면 화폐의 가치는 그 사이에도 계속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택시를 타는 것이 버스를 타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해질 때" 비소로 우리는 물가 상승의 문제점을 깨닫게 된다. 이와 유사하게 물가 상승은 채권자보다 채무자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

 

     밀턴 프리드먼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물가 상승은 생산량보다 통화량이 더 빠르게 증가할 때마다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고,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는 통화 현상이다." 다시 말해 물가 상승은 너무 적은 상품에 너무 많은 돈이 몰릴 때 일어난다는 뜻이다.

     물가상승은 법적으로 승인받지 않은 세금이나 마찬가지다. 물가가 급격하게 상승하면 시장이 어지러워지고 정치가들은 혼란에 빠지며 결국 국민들은 빈곤해진다. 어쩌면 연방준비은행 보다 컴퓨터가 통화 정책을 잘 관장할지도 모른다.

 

▣ 암호 화폐의 시작

     정부가 아닌 다음에야 화폐를 찍어 발행하는 일은 번거롭고 비용도 많이 들 뿐 아니라 불법이다. 그런데 디지털 암호 화폐는 정부가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면 비용과 수고는 생각할 필요도 없으며, 대단히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 현재 사용되는 암호 화폐의 가치는 대략  수천억 달러 규모이며, 실제로 유통되는 화폐의 가짓수는 사상 처음으로 국가의 수를 넘어섰다. 암호 화폐는 발행과 유통에 중앙 정부의 권위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혁명적이지만 동시에 파멸의 근원이 될지도 모른다.

 

     암호 화폐에 대한 투기 혹은 투자는 일부에게는 엄청난 부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실망을 안겨줄 것이다. 암호 화폐의 가치는 무척 광범위하고 빈번하게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가 더 이상 화폐와 자산, 부채의 가치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면 정부와 국민의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 생각해 보자.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금융업과 은행업의 관행들도 같이 바뀔 것이다.

 

     암호 화폐는 전자 화폐의 일종으로 암호를 사용해 보내주는 사람에 의해 거래가 인증되며, 지불과 잔액은 모든 사람이 접속할 수 있는 전자 기록 보관소에 기록된다. 이를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개념은 무척 단순하다.

 

     쉽게 설명하면, 벽돌로 쌓아 올린 벽이 길게 늘어서 있다고 상상하고 그 벽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다양한 기록 모두를 벽돌 하나하나에 새긴다. 규칙은 단 하나, 반드시 무엇인가 적혀 있는 벽돌 바로 옆 공간, 빈 벽돌이 남지 않도록 적어서 채워야 한다. 그러면 뭔가를 적어나갈 때마다 제일 위 줄부터 차례로 아래까지 벽돌 하나하나가 채워진다. 벽돌 위에 새겨진 기록은 절대 지울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이 그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이렇게 벽돌 벽이 다 채워지면 그 옆에 똑같은 두 번째 벽을 나란히 세우고 똑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이런 벽돌은 어떤 목적이든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가 호텔의 어떤 방에 묵었는지, 손님들은 매일 어떤 추가 비용을 물었는지, 마지막으로 호텔을 나설 때 모두 합해 숙박료는 얼마나 냈는지 등등을 추적할 수 있다. 또한 동전과 지폐를 누가 갖고 있으며 그 돈이 언제 지급 수단으로 사용되었는지도 추적할 수 있다.  

 

     앞선 설명과 같은 벽돌이 아닌 진짜 실체가 있는 서로 하나로 이어진, 그리고 결코 수정이나 변조가 불가능한 기록들을 보관할 수 있는 디지털 기록 보관소를 만든 것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에 접속한 컴퓨터는 각각의 거래를 확인하고 전체적인 체계에 투명성을 제공하며, 저체 블록체인고 똑같은 복사본이 접속된 각각의 컴퓨터에 저장된다. 표면적으로 보면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암호 화폐 비트코인은 대단히 안전하다. 미국 복권인 파워볼의 당첨 확률이 대략 1/2억 9200만이라고 하는데, 256비트 암호 체계를 사용하는 비트코인 개인 암호가 뚫릴 수 있는 확률은 1/115 콰트로비진틸리언(0이 78개 붙은 단위)이다. 다시 말해 파워볼 복원에 연속으로 아홉 번 이상 당첨되는 것과 같은 확률이다.

 

      비트코인은 화폐로서 가치가 2017년 말 2만 달러로 최고치에 달했다가 1년 뒤 2500달러 이하로 급락하는 등 변동이 심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기반이 되는 디지털 기술은 여전히 남아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전자 화폐의 이중 지불 문제를 간단하고 깔끔하며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암호 화폐는 신뢰감을 높이기 위해 지소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느리게 공급량이 조절되고 있으며, 항상 컴퓨터 연산 과정을 통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움직인다. 

 

     기술적 기반에는 문제가 없지만 비트코인은 편리하고 신뢰성 높은 교환 수단이 되는 데는 아직까지 실패했다. 실패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각국 정부가 암호 화폐들을 어떻게 규제할지 아직 불확실하다는 이유가 제일 크다. 또한 한탕을 노리는 투기 세력의 끝없는 탐욕도 문제다. 이처럼 암호 화폐는 기존의 화폐를 대신하지 못했지만 블록체인 기술은 근본적 토대부터 기존의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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